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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전시 하 농촌 아동과 아동문학>(1943)

밍가 2020. 12. 31. 20:09

전시(戰時)(下) 농촌 아동과 아동문화

이 원 수

 

김 형!

헤서(惠書)는 반가이 읽었습니다.

적어보내 주신 아동문화에 관한 형의 탁월하신 의견에서 얻는 바 많았습니다.

제반 시설이 완비된 서울에 계신 형께서 절실히 느끼시는 아동문화의 빈한은, 직접 농촌 아동의 생활과 그 문화의 진상(眞狀)을 살피실 때 일층 심각함을 통감하시리다.

오늘의 반도(半島)의 아동은 지난날의 아동과 동일시할 수 없는 크나큰 임무를 가진 보배로운 존재임을 생각할 때 부형된 자는 물론, 아동 문제에 관심을 갖는 자 재고 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오늘의 아동이야말로 일본정신(日本精神)을 막바로 그 생명에다 불어 넣을 수 있는 황국신민(皇國臣民)입니다.

우리는 어린 생도들이 스스로 신사(神社) 앞에 나아가 공손히 참배하는 아름다운 광경을 봅니다.

그들이야말로 강제 받지 않고서 일본정신을 가슴에 새기고 훌륭한 황국신민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오늘의 성인들에 비하야 얼마나 다행한 그들인지요. 하지만 이런 다행한 오늘의 아동들에게도 문화적으로 비참한 처지에 떨어진 불행은 실로 큽니다.

도시의 아동은 그래도 다소 나은 점이 있겠습니다만 시골일수록 아동의 생활은 황량하고 그들의 환경은 어른들의 구태(舊態) 인습에 물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들 정신적 식량에 주린 농촌 아동이 수적으로 반도 아동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과 그들이 어른들의 누추한 생활 정신까지 계승하게 되어 황국신민으로서의 발랄한 장래를 개척함에 지장이 되는바 많을 것을 생각할 때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지(內地)에서는 과거의 난발(亂發)한 아동 문화재(文化財)의 정화와 강화를 위하야 일본아동문화협회(日本兒童文化協會)의 결성까지 보게 됐다 합니다만, 내지 이상의 주도(周到)한 용의(用意)와 열의로써 이루어져야 할 특수한 지역인 이곳 아동문화가 이렇듯 빈한해서 되겠습니까.

아동독물(兒童讀物), 동화, 영화, 연극, 회화, 음악, 무용, 완구 그 어느 하나 반반하게 주어지는 게 없습니다. 우리가 국민학교(國民學校)에 이 점에 관하여 특별한 유의 잇기를 바라는 바도 큽니다만, 동시에 우리의 힘으로 건전한 아동독물의 출생을 바라는 마음, 또한 간절합니다.

김 형!

항시 아동 문제에 마음 쓰시는 형께서 전시(戰時) 하(下) 농촌 아동의 실정을 짐작하셔서 이네들을 위하여 적극적 진력이 있어 주시기를 바라면서 이 두서 없는 글을 맺겠습니다.

-?반도의 빛(半島の光)?(언문판) 1월호, 조선금융조합연합회, 1943, 15쪽.

<전승(戰勝) 신춘(新春) 농촌의 벗에게 부치는 편지’라는 기획 자리에서 최정희․이기영․채만식․박계주․박승극․장혁주의 것과 함께 실렸다. 다른 이들은 모두 도시에서 농촌으로 보내는 편지글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이원수의 경우는 농촌에 있는 그가 도시에 있는 ‘김 형’이라는 이에게 부치는 꼴을 갖추었다.>